성경문화

[성경문화] 산당 (high place)

매일같은하루 2023. 6. 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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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은 히브리어로 '바마'인데,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주로 산 위에 큰 나무가 많고 숲이 우거진 지역에 세워졌다. 이는 아무래도 신을 만나려면 평지보다 높은 곳이 더 유리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산당은 '푸른 나무아래'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성경문화] 산당 (high place)

 

[성경문화] 산당 (high place)

 

성경에서 산당은 크게 두 가지 성경으로 구분되었다.  하나는 우상숭배 처소로서의 산당이며, 또 하나는 성전 건립 전까지 임시예배처소로서의 산당이다. 

 

1. 우상 숭배 처소로서의 산당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산당을 철저하게 훼파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민 33:52). 이는 당시 가나안 부족들이 산당을 중심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B.C.3000년경의 것으로 보이는 타원형 형태의 산당이 므깃도에서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가나안 부족들이 어린이들을 제물로 드리는 인신 제사와 음란한 제의가 행해졌던 흔적들이 나타났다. 가나안 족속들은 푸른 나무 아래 산당에 가나안 주신인 바알이나 배우자 격인 아세라 신상을 세우고 숭배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는 여자 사제들의 주관 아래 음란한 예배 의식이 거행되었다. 그래서 산당 제사는 우상 숭배와 함께 성적으로도 매우 타락하고 부도덕하였다. 이런 이유에서 가나안 땅의 산당들은 모두 철폐해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 사사 시대를 거쳐(삿 2:12), 왕국시대, 분열 왕국 이후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 결국 산당은 왕국 멸망의 주요 원인이 되고 말았다. 

 

2. 성전의 기능을 대신한 산당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 세겜에 성막을 세웠다. 이후 성막은 길갈, 실로, 벧엘, 실로, 놉, 기브온을 거쳐 다윗 시대 때에 예루살렘으로 옮겨졌다.(삼하 6:16) 하지만 엘리 제사장 때 아벡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긴 이후 중앙 성소였던 실로는 사실상 구심점을 잃게 되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각처에서 산당을 짓고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예배하였다. 이런 산당 중심의 제사는 사무엘, 다윗을 거쳐 성전이 세워진 솔로몬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여 중앙 성소 기능을 강조했지만, 이것은 정치적 안정을 꾀하다는 이유로 많은 이방 여자들을 아내로 삼고 이들을 위해 예루살렘 동편 언덕에 산당을 지어 주었다. 이를 기화로 산당은 우상숭배처로 전락한다. 그래서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와 요시야 시대를 제외하고 산당은 남유다 역사 내내 신앙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었다. 심지어 여로보암, 여호람, 아하스와 므낫세 왕은 산당을 재건하며 우상숭배에 앞장서기까지 했다. 

 

유다 말국 말기에 멸망을 앞두고 에스겔은 산당을 찾아다니며 우상을 섬기는 유다 백성을 향해 '너희가 찾아다니는 산당이 무엇이냐'는 말로 백성들의 우상 숭배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왕국이 멸망하고 나서야 산당과 산당 제사는 비로소 자취를 감추었고, 포로 후 유대교에서는 산당 예배를 용인하지 않았다. 

 

출처 : 성경배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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