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말씀연재/창세기(GENESIS)

[하루말씀] 창세기 16장 12~16절

매일같은하루 2023. 6. 2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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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갈은 ‘술’이라는 광야의 한 우물 곁에 홀로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는데요. 여기에서 나타나는 여호와의 사자는 천사라기보다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하갈의 눈앞에 여호와의 사자로 계십니다. [하루말씀] 창세기 16장 12~16절

 

[하루말씀] 창세기 16장 12~16절
[하루말씀] 창세기 16장 12~16절

 

[하루말씀] 창세기 16장 12~16절

 

1. 성경본문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2. 하루말씀

그 분이 하갈에게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우리의 갈길이 정해져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길을 아신다는 것) 그랬더니 하갈이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이것은 종이었던 원위치로 돌아가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복된 자리를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하시는 자손의 축복이 지켜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집에서 도망 나온 하갈을 이렇게 붙드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11절에 아들 이스마엘의 이름에 그 뜻이 들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갈의 고통을 들으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통 중에 부르짖는 하갈의 기도소리를 들으셔서 하갈을 위로하러 오신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기도 소리를 들으십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이스마엘의 미래에 대해서 예언해 주시기를12절,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하갈이 낳을 아들에 대해여 들나귀 같고, 모든 사람을 치는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들나귀는 (욥기 39:5-8)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6. 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 7. 들나귀는 성읍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비웃나니 나귀 치는 사람이 지르는 소리는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8. 초장 언덕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풀을 찾느니라 결국 이 말은 싸우기를 좋아하는 민족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은 아랍인의 선조가 됩니다.

 

이 축복의 말씀에 대해 하갈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곧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돌아보심에 감사하는 표현입니다. 아브람의 집안에서 일할 때에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느끼지 못했는데 쓸쓸한 광야 한복판에 외롭게 있는 상태에서 주님을 만나니 그 은혜가 너무나 놀라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하며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시고 약한 자를 들어 믿음이 강한 자로 쓰십니다. (마 9:12-13)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하갈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에 큰 기쁨을 느끼고 자기가 있던 샘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살아계셔서 나를 돌아보시는 분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샘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기록합니다. 지역적으로 보면,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의미상으로 보면, 가데스는 거룩한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베렛은 더러워진, 얼룩진 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므로 하갈이 주님을 만난 이곳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길에 중간에 있는 갈림길인 것입니다.

 

# 하갈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아브람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광야에서 있었던 일들을 아브람과 사래와 함께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고 지어줍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86세에 귀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사도바울이 (갈 4:22-23)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 말씀을 통해 보니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낳은 아이라 기록하는 것입니다. 당시 하갈이 낳은 아이는 사래가 낳은 아이로 여겨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15, 16절을 보니 “하갈이 낳은 아들”이라 기록됩니다. 결국 이것은 하갈을 축복하신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사래에게 주실 아이가 아님을 분명히 하시는 것입니다.

 

사래가 생각하는 상속자에 대한 계획은 분명히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의 아들 이삭은 그 후 13년이 더 지나서야 태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이 교훈을 받습니다. 받은 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을 때에 받는 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없다라면 믿음이 생길 때에 받는 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앞에 깨어서 믿음 있는 자가 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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